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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읽지 "Book"/요즘 모읽지?

<인간 실격> 여리고 나약했던 그의 자살을 바라보며



타인의 시선에 너무 예민하여 혹여 그들에게 미움 받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익살을 떠는 요조. 타인의 부탁은 거절하지 못하고 자신의 편의보다 타인의 기분을 중요시 하는 요조. 하지만 결국 자신이 의지했던 사람들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그로부터 자신은 인간으로서 실격되고 말았다고 느끼는 요조. 지독하리만치 여리고 예민했던 요조는 다자이 오사무 자신이었던 모양이다. 다자이 오사무와 요조는 수 차례의 자살 시도를 감행했다는 점에서도 공통점을 갖는데, 알려진 바와 같이 <인간 실격>은 다자이 오사무가 겪었던 일들과 연관이 있다. 완전한 자전 소설은 아니지만, 어느 면면으로 닮은 구석이 많아 그가 스스로 고백 내지 변명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다자이 오사무의 이력이나 요조의 삶에서 두드러지는 것이 앞서 말한 예민한 감성과 이와 관련된 자살 시도일 것이다. 요조는 남들에게 좋은 이미지로 남기 위해 유년기부터 스스로 가식을 훈련하는데, 이는 영악하다기 보다는 안쓰러워 보인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뺏거나 얻으려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들의 기분을 상하지 않도록 하여 자신을 방어하려 했기 때문이다. 실제 다자이 오사무도 자신의 가족을 경제적 부유함 때문에 탐탁지 않게 여기면서도 전적으로 의지하고 그들에게 인정 받기 위해 애썼다고 한다. 하지만 요조도 다자이도 자신이 의지하고 믿었던 사람들로부터 외면 당하며 자살을 시도했고, 다자이는 다섯 번째 시도에 비로소 죽음을 맞았으며 그가 말년에 그려낸 요조 또한 비슷한 운명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자살. 다자이 오사무의 자살은 결정적으로 버림 받았다는 데에 있는 것 같지만, 그 이전의 자살 시도를 볼 때 더 포괄적인 의미에서 착수되었을 것이다. 인간 실격. 다자이 오사무는 요조와 마찬가지로 자신이 더 이상 살 가치가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될 때, 아니 그의 말에 따르면 인간이 되기에 실격인 존재로 여겨질 때 자살을 감행한 것 같다. 하지만 그들의 자살 시도는 완전히 삶을 포기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해서라도 복구하려는, 일종의 구원을 바라는 의존적 행동으로 느껴진다. 모든 문제 해결을 자살로 끝내려는 여리다 못해 나약하고 모자란 인간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만큼에 견줄 만큼 감성이 예민하고 요조의 고백을 상당히 이해하는 편임에도 그러한 자살 충동을 극복해냈거나 슬프게도 혐오하던 인간상으로 사회화 되어 가고 있기 때문에, 두 사람의 모습은 굉장히 사춘기적이고 성숙되지 못한 것으로 느껴진다. 게다가 혼자가 아닌 여자와 자살하려는 것은 또 무슨 심보란 말인가.


어쩌면 다자이 오사무가 시대와 장소를 다르게 살았다면 그와 요조는 자살을 택하지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많이 개선되지는 않은 것 같지만 당대 일본인들은 지금보다 훨씬 자살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이었으니까. 우리나라도 갈수록 자살률이 높으니 장소 면에서 우리나라도 별 도움이 되지는 않겠다. 아무튼 다자이 오사무가 자살을 택하고 또 택했던 이유는 자살이라면 죄를 용서 받을 수 있고, 명예롭게 삶을 마무리 지을 수 있다는 그들의 인식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아주 특별한 케이스를 빼고 대부분의 자살은 삶에 대한 비겁한 포기라고 생각하기에, 그의 문학적 유려함과 섬세한 감성, 그리고 그에 대한 통찰력을 제외한 부분들에서는 숨이 턱 막히듯 답답해졌다. 다자이 오사무의 글을 왜 청춘의 시기에 읽어야 한다고 말하는지 조금은 이해가 된다. 최소한 그의 글은 냉혹한 삶을 마주한 순수한 인간을 공감으로서 위로해주는 역할을 할 수 있을 테니까.


뭐든 상관없으니까 웃게만 만들면 된다. 그러면 인간들은 그들이 말하는 소위 '삶' 이라는 것 밖에 내가 있어도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을지도 몰라. 어쨌든 인간들의 눈에 거슬려서는 안 돼. 나는 무(無)야. 바람이야. 텅 비었어. (19쪽)


존경받는다는 개념 또한 저를 몹시 두렵게 했습니다. 거의 완벽하게 사람들을 속이다가 전지전능한 어떤 사람한테 간파당하여 산산조각이 나고 죽기보다 더한 창피를 당하게 되는 것이 '존경받는다' 는 상태에 대한 제 정의였습니다. (23쪽)


아아, 인간은 서로를 전혀 모릅니다. 완전히 잘못 알고 있으면서도 둘도 없는 친구라고 평생 믿고 지내다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채 상대방이 죽으면 울면서 조사(弔詞) 따위를 읽는 건 아닐까요. (92쪽)


쓸쓸할 때 쓸쓸한 얼굴을 하는 것은 위선자가 하는 짓일세. 쓸쓸하다는 것을 남이 알아줬으면 하고 일부러 표정을 꾸미는 것일 뿐이야. (144쪽, <직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