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에 대한 이야기는 언제나 재미있다. 한 컷의 이미지가 짧고 길고 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들어 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애초에 작가가 염두에 둔 이야기가 있어 그것을 알게 되는 경우에는 지적 욕구가 채워지는 느낌이고, 그것과는 별개로 이미지를 보고 떠오르는 이야기를 구상하는 경우에는 굳었던 상상력이 재활하는 느낌이다. 이러한 그림 보는 재미들을 미술계의 두 학자가 열심히 찾아다 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출간된지는 2년이 지났지만 워낙 오래된 그림들로 놀이를 하고 있고, 이들의 이야기가 2년 사이에 뒤바뀔 만큼 섬세하게 시의성을 다루는 것들이 아니어서 지금 읽어도 신간과 다를 바가 없다.
두 사람은 열 가지 주제를 놓고 서신을 주고 받으며 자신들이 찾은 그림과 이야기를 나눈다. 손철주 미술평론가는 동양의 미술에서 이야기를 찾고, 이주은 미술사가는 서양의 미술에서 또다른 이야기를 찾는다. 마치 두 권의 책을 읽는 것처럼 동서양의 그림들이 주는 느낌만큼이나 두 사람의 성향이 꽤 극명하게 갈린다. 손철주 평론가는 '평론가'라는 타이틀만큼 딱딱하거나 동양미술을 생각할 때 느껴지는 이미지만큼 고리타분하지는 않다. 물론 동양미술이 고리타분하다는 것도 반박의 여지가 수두룩한 고정관념에 불과한 것이지만, 어쨌든. 그의 글은 남성의 주색을 호방한 기상으로 여기는 등, 말발이 좀 되시는 개방적인 대학교수의 분위기를 풍긴다.
사실 실제 대학교수는 그와는 꽤 다른 분위기의 글을 쓴 이주은 미술사가인데, 내 편에서는 낭만적이면서도 이상을 좆는 듯한 그녀의 감성에 공감이 많이 갔다. 손철주 평론가의 글도 익살스럽고 재치 있어 즐겁게 읽은 부분이 상당했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동하는 편은 이주은 미술사가의 이야기들이었다. 화제의 흥미로움이나 동서양 미술 간에 드러나는 관념적인 차이는 호불호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두 작가의 시각 차이는 어느 한 편으로 내 마음을 기울게 하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누구의 글이 좋았다는 것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다양한 그림을 치우치지 않은 시각에서 보는 기회를 맞을 수 있었다는 것 아닐까 싶다. 또다른 그림 이야기를 구해봐야겠다.
세상의 인정을 받고자 하는 사람들은 늪에 빠지기 쉽습니다. (80쪽)
영혼의 자유를 위해 사람들은 또 다른 구속을 끊임없이 선택합니다. (120쪽)
제 욕심으로 가득 찬 사람은 나이를 불문하고 추하지만, 특히 젊은이가 지닌 것을 빼앗으려드는 나이든 자의 탐욕이야 말로 가장 추합니다. (140쪽)
취미는 재미삼아 하는 짓입니다. 그러니 남들이 콩팔칠팔할 수 없지요. 오죽하면 우리 속담에 '동냥자루도 제 맛에 찬다' 고 할까요. (201쪽)
취향은 남이 판단할 수 없는 나만의 세계를 반영하고 있어요. 그래서 내가 나 자신을 남에게 드러내는 소통의 방식이 되기도 합니다. 취향의 교감이 최고조일 때 관계의 만족도는 단연 최상이 아닐까 싶어요. (21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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