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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볼까 "Movie"/요즘 모볼까?

<설국열차> 마지막 인류가 달리는 봉준호의 열차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고자 대량 살포한 CW-7으로 오히려 빙하기를 초래한 인류의 마지막 생존자들이 한 해 동안 세계일주를 하는 자급자족형 열차에 올랐다. 하층민인 꼬리칸 사람들은 최고의 권력자가 있는 엔진을 향해,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일으키며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돌진한다. 이 단순한 이야기와 인간 사회의 축소판이 설국열차라는 다소 뻔한 상징은 예고편과 기본적인 설정 정보만 접해도 누구나 짐작 가능하다. 다만 이게 끝이 아님을 예상할 수 있는 보통의 영화팬들은, 봉준호 감독이 열차 밖으로의 삶을 제시할 것임을 어렵지 않게 예상해볼 수 있다.


감독이 보여준 결말이 원작에서는 어떤 내용으로 그려지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가 제시한 결말은 빙하기라는 환경과 열차가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예견된 일이다. 둘 다 영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빙하기는 이전에 그랬듯 끝나기 마련이고, 움직이는 것은 언제든 멈추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러한 결말을 봉 감독이 제시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환경이 아닌 구조에 있다. 권력을 폭력으로 유지하고, 그렇게 유지된 권력을 다시 폭력으로 공격한다는 것, 결국 또 새로운 폭력으로 쟁취한 권력을 얻는다는 것은 어느 누구 하나 구원 받지 못하는 사이클이다. 이를 슬프게 받아들일 때. 모두가 미치광이 취급을 하던 동양인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낸다. 이로써 인류에게 다시 희망이 주어진다. (콜라 모델은 희망의 상징이었겠지만, 이게 오히려 절망으로 보였던 건 내가 꼬여서겠지?)


원작을 읽어 봐야만 봉준호 감독의 연출이 얼마나 제 역할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짐작건대 계급사회를 의미하는 열차 칸의 구조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철저한 관리 및 교육을 상징하는 부분들은 원작의 탄탄함 덕에 설정될 수 있었을 것이고, 서양인의 앞잡이로 일본인이 있다는 것과 인류의 미래를 가져오는 인물이 제3세계의 인종이라는 것에서 느껴지는 세계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냄새는 봉준호 감독이 강화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아마도 대개 그렇듯 시간 및 금전적인 여러 가지 요인으로 그가 영화에 담아낼 수 있었던 것은 원작의 주요 얼개와 핵심적인 일부분일 것이다. 본래 원작에 있던, 혹은 그것을 토대로 의도했던 열차칸들은 더욱 디테일하지 않았을까. 또 그 알레고리 또한 더 미묘하지 않았을까. 무언가 덜 그려진 느낌이기는 하다.


강약 조절이 안 되는 듯 마음 급해보이는 전개와 그로 인해 감동과 긴장의 포인트를 잡기 어려운 점은 부인할 수 없다. 조금 더 세련되게 이야기를 보여주길 바랐는데 이 부분에서는 기대 이하다. 다만 원작의 힘인지 봉 감독의 힘인지 모호하지만, 식상하기는 해도 꽤 그럴싸한 알레고리의 덩어리를 완성했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최대로 끌어내어 표현한 멋진 배우들의 살 떨리는 연기는 분명 그들의 능력 외에도 이를 끌어낸 감독의 힘이 있음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문제는 앞서 말한 그 식상함이다. 예나 지금이나 극히 지당한 논리를 엄청난 비밀인 것처럼 보여주는 탓에 반전이라고 놀랄 틈도 없이 비극적인 진실로 쉽게 받아들이고 말았다. 식상함도 식상하지 않게 보이도록 하는 재주를 보여주면 좋으련만, 이번에는 <지리멸렬>의 이야기를 <괴물>의 양식으로 보여준 느낌이다. 나는 어느 면으로 보나 <마더>가 좋은데 말이지. 양갱은 당분간 못 먹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