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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볼까 "Movie"/요즘 모볼까?

<맨 오브 스틸> 이거 잘돼야 해요, 그래야 저스티스리그 봅니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6. 16.




1주일 전, 아이맥스 예매 오픈이 되던 당일에 서둘러 예매했던 새로운 슈퍼맨 <맨 오브 스틸>. 잭 스나이더 감독에 대한 기대는 크지 않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의 제작과 각본 참여, 그리고 한스 짐머의 손에서 탄생한 사운드트랙 때문에 기대할 수밖에 없던 영화다. 선공개 된 제작과정이나 트레일러를 통해, 전설이 된 크리스토퍼 리브의 슈퍼맨 시리즈를 능가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추측도 조심스럽게 해봤다. 브라이언 싱어 감독, 브랜든 라우스 주연의 최근 버전인 <슈퍼맨 리턴즈>가 비슷한 기대를 모았다가 꽤 큰 실망을 주었기 때문에 섣부른 기대를 걸지 않으려 했지만, 기대를 걸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제작진이 아닌가.


확실히 한스 짐머는 귀는 물론 심장까지 호강시켜주는 거장이다. 그의 스타일은 다른 사람의 음악과 확연히 구분될 정도로 뚜렷하지만, 그만큼 다른 사운드를 만드는 게 어려워 보일 정도로 비슷한 느낌이다. 하지만 그가 영화에 사운드로 감정을 실어줄 때마다 각 작품의 캐릭터가 지닌 카리스마, 공간의 위엄이 그제서야 살아난다. 스케일이 크고 빠른 속도나 긴박함 등이 중요한 영화에서 그의 음악은 가장 빛을 발하는 것 같다. 사족이지만, 같은 맥락에서 올 가을 영국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는 론 하워드 감독의 F1 실화, <러쉬>가 기다리는 이유도 한스 짐머가 음악을 맡았다는 점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크리스 햄스워스가 주연이라는 사실은 어디까지나 두 번째 이유.


크리스토퍼 놀란도 그의 장점인 깊이 있는 세계관을 성공적으로 보여주었다. 최근작이 그리 오래되지 않아 요즈음 세대까지 털어도 슈퍼맨의 스토리를 모르는 사람은 극히 드물 것이고, 슈퍼맨 이야기를 흥미있게 끌어간다는 건 쉽지 않을 일이다. 그러나 놀란은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고 뿌리를 찾고 싶어하는 슈퍼맨의 성장기로 재해석 한 덕에 완성도 높은 스토리를 만들어냈다. 클락이 어릴 때 읽는 책으로 플라톤의 <향연>이 등장하는 것 또한 슈퍼맨의 철학적 고뇌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담을 수 있는 철학의 범위가 비교적 한정적인 히어로물, 슈퍼맨 캐릭터가 지닌 태생적 무미건조함을 딛고도 이 정도의 철학을 흔들림 없이 담아낸 것은 놀란이기에 가능한 일 아닐까.


엄청난 것은 장점만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이 함정. 지루함과 유치함도 보통은 아니다. 놀란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잭 스나이더도 영상 연출에는 일가견이 있는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는 만큼, <맨 오브 스틸>의 영상은 입이 벌어질 만하다. 쉼 없이 빠르게 전개되는 액션과 공포가 와닿는 실감나는 붕괴 장면들, 전반에 깔린 압도적인 스케일은 슈퍼맨의 이름만큼이나 대단하다. 하지만 그만큼이나 멋진 영상을 지겹게 느끼도록 만드는 건, 아마도 욕심 때문이었겠지. 버리자니 아까웠던 것일까. 만들어 놓은 모든 장면을 싹싹 쓸어 담은 것처럼 슈퍼맨은 육해공을 전전하며 끝없이 싸웠다. 감탄하며 보아야 하는데 지루함 때문에 감각이 둔해지고 있는 것 같아, 의식적으로 멋진 장면이다! 기억해야해! 멋짐을 느껴야해!! 하면서 힘겹게 정신을 리프레시하며 보아야 했다.


히어로물은 어쩔 수 없이 짙은 허구와 영웅심, 크게 벗어날 수 없는 스토리 구조로, 다소 뻔하고 유치한 구석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런 부분은 히어로물 팬으로서 들먹일 수가 없는 부분이고, 내가 짚고 유치함은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던져지는 어색한 대사들이다. 최근 개봉작인 <아이언맨>만 보아도, 어느 타이밍에 어떤 캐릭터가 웃을 수 있는 기회를 줄 수 있는지 정확히 알고 제작한 느낌이지만, 반면 <맨 오브 스틸>은 진지한 분위기에 몰입되어 있을 때 산통을 깬다. 너무 심각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뒤늦게 들었던 걸까. 후반부의 중요한 몇 장면에서 유독 거슬렸다. 후반 얘기가 나와 말인데, 초반의 니콘 광고도 소름 돋을 정도였다. 최근 아침드라마 속 삼성 에어컨 광고만큼이나 충격적이었다.


취향에 맞지 않는 슈퍼맨의 외모를 비롯한 이런 적지 않은 부정적 요소들 때문에 어마어마한 음악과 영상, 철학에 반해놓고도 다른 히어로물보다 뛰어나다는 인상을 받지 못했지만, 그래도 이 영화 잘 되었으면 좋겠다. 이게 잘 돼야 <저스티스 리그>를 극장에서 볼 수 있다고 하니 말이다. 배트맨과 슈퍼맨만이라도 같이 나오는 걸 보고 싶다. 분명히 놀란+짐머 크로스일 텐데. 생각해보면 마블의 히어로물을 보면서 눈물 흘리는 경우는 순전히 멋지기 때문에 울컥하는 것뿐이었지만, DC의 히어로물은 볼 때마다 매번 감성적으로 감동해서 울게 되는 것 같다. 이번에도 멋진 부모인 켄트 부부의 모습에 눈물을 남발했다. "자신의 믿음을 따라 행동하세요. 그럼 진실을 알게 되겠지요." 목사님의 말은 요즈음 내 상황에도 딱 필요한 말이어서 더욱 울컥. 저스티스 리그를 보면서도 울어보고 싶다. 나와주었으면! 슈퍼맨 잘 되었으면! 내가 짚은 단점 무시해줘요, 음악 들으러 가요, 영상 진짜 끝내주는데, 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