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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읽지 "Book"/요즘 모읽지?

<프랑스 남자들은 뒷모습에 주목한다> 미국인이 본 유혹의 프랑스




2년 전, 낭만과 예술이 가득한 도시라는 기대를 품고 구경 갔던 파리는 기대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었다. 모든 것은 로맨틱했고 세월을 체화한 건축과 그림, 세느강변은 마음을 일렁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방인의 감동을 극대화하기 위해 보았던 파리 영화에서도, 화자로 등장하는 프랑스인들마저 내 기대와 감상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재차 말해주고 있었다. 그런데 비프랑스인, 특히 미국인들이 말하는 프랑스와 프랑스 사람들은 여기에 상반된 것들이 많았다. 너무 끈적하며 허황되고 가벼우며 수다스럽다는 것이 주된 의견이었다. 특히 최근에 읽었던 빌 브라이슨의 책에서는 프랑스인의 쌀쌀맞고 고집스러운 면이 신랄하게 지적당하고 있었다.


분명 프랑스에 대한 동경을 갖고 그들을 접했던 내게 프랑스는 애초에 달콤한 곳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거의 판단이 불가한 지경에 이르렀던 것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가볍고 쌀쌀맞은 곳이라니. 영국이나 독일 철학자들에 비해 뜬구름 잡는 듯한 구석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래도 그 놀라운 지성에 감탄했던 프랑스 철학자 몇인데 그런 오명을 씌우다니! 또 내가 겪은 프랑스는 자부심은 강해도 타인에 대한 도움을 소홀히 하지 않는 친절한 도시였다. 무식함을 온몸에 두르고 거리를 헤매일 때마다 얼마나 많은 프랑스인들이 소소한 도움을 건네주었는지 떠올려보면 프랑스인의 불친절함에 대한 의견은 아무래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이런 혼란을 겪고 있던 차, 미국의 칼럼니스트인 일레인 사이올리노의 프랑스인에 대한 분석을 읽게 됐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프랑스인은 유혹을 위해, 유혹의 의해, 유혹으로 살아간다. 유혹하기 위해서 그들은 미국은 물론 우리나라에서도 성희롱으로 여길 만한 언행까지도 스스럼 없이, 오히려 기분 좋게 받아들인다. 유혹에 성공한 자신에 대해 자랑스러워 하는 것이다. 이런 마인드는 프랑스인들의 문화 전반에 스며들어 있고, 그들 특유의 꾸밈 없는 듯하면서 자유롭고 예술적인 스타일을 만들어왔다. 과거의 전성기를 지나 사실상 쇠퇴하고 있는 프랑스이지만, 그들은 상대를 유혹하는 것을 넘어 자기 자신까지 도취시키는 능수능란한 유혹의 기술로 그들만의 장점을 강화해가고 있다.


프랑스를 동경하는 만큼 그들의 지성과 예술적인 감성을 인정하기에 대부분은 받아들이는 데 수월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읽는 대목도 많았고, 심지어 취향과 스타일에 관한 부분들을 읽을 때엔 대한민국 사회보다 그들의 사회에 더 많은 공감이 됐다. 하지만 역시 나는 어쩔 수 없이 외국엔 연고조차 없는 골수 한국인이 맞는지, 성과 연애에 대해 개방적이고 포용력 강한 프랑스인을 묘사한 부분을 읽는 동안에는, 자신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사고방식이 당연하다고 여기는 프랑스인들 때문에 옳고 그름의 기준을 잃는 것 같았다. 마찬가지로 프랑스를 관찰하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 미국인의 시각에서 쓰인 것이기 때문에 이 책에 쓰인 프랑스인이 진짜 프랑스인일 거라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프랑스인의 '어떤' 모습을 발견할 수는 있다. 프랑스인에게는 무언가 있는 듯한데, 그 비밀이 무엇인지 쉽게 파악되지 않는다면 이 책을 읽어보면 될 것 같다.



대화는 애쓰는 것처럼 보이지 않을 때 최고의 효과를 거둔다. "유혹의 귀재는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 생각에, 남자든 여자든 대화에 재능이 있는 사람은 대화하는 법을 아는 사람이 아니라 침묵하는 법을 아는 사람입니다." 작가 피에르 아술린이 말했다. (131쪽)


파리의 거리에서는 여자든 남자든 서로에게 즐거움을 줘야 한다. 사람들은 결코 혼자 걷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끊임없이 눈으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설령 전혀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157쪽)


남자든 여자든 스타일과 관련된 가장 중요한 규칙은 세련된 겉모습 뒤에 감춰진 공들인 노력의 흔적이 드러나선 안 된다는 것이다. 마치 자연스레 그런 것처럼 보여야 한다. (183쪽)


나는 젊은 프랑스 친구가 자신은 절대로 유행하는 향수는 쓰지 않는다고 말했던 것이 생각났다. "사람들은 스토리, 말하자면 자신의 스토리가 있는 향수를 원하죠. 향수란 영원히 자신의 스토리와 연결되어야 해요." (222쪽)


프랑스가 쇠퇴하고 있다는 인식은 수십 년 동안 국민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아왔다. 역사를 높이 평가하고 과거의 영광을 찬양하고 있지만 그런 것들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과 현재의 상태를 유지하려는 경향과 맞물려 있다. 아름다움과 쾌락의 장소로서 프랑스의 명성을 지키기 위한 용감하고 필사적인 시도들은 쇠퇴론과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유혹은 플아스가 제공해야 하는 최상의 것이다. 그것이 효과를 발휘하면 마법과 같은 일이 벌어진다. 유혹은 영광스럽고 투명하고 이상적인 이미지를 지향하는 비밀스럽고 신비로운 게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또한 언제라도 비참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 비능률, 연약함, 애매모호함을 수반하기도 한다. 그 게임이 냉정하고 힘든 현실의 벽에 부딪칠 때, 정체가 드러날 때 유혹은 실패한다. (314~3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