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모읽지 "Book"/요즘 모읽지?

서정시의 모든 것, 루제비치 시선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6. 5.

 


루제비치 시선

저자
타데우시 루제비치 지음
출판사
지식을만드는지식 | 2011-11-10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지식을만드는지식 시선집 『루제비치 시선』. 타데우시 루제비치의 ...
가격비교

전용뷰어 보기

 

 

 

 

전쟁에서 살아남은,

그리고 먼 이국의 전쟁을 시로 담은 서정시인 타데우시 루제비치.

아우슈비츠의 광기에서 살아남은 자의 시. 아도르노는 루제비치를 두고 이 이후의 서정시는 없다라고 했다. 아도르노의 이야기를 언급하지 않을 수없다. 베토벤, 말러를 사랑했지만 슈베르트와 쇼팽을 퇴행했다고 맹비난 했던 그였다. 그는 어쩌면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나 참혹하고 서글픈 서정시에 대해 지나친 낭만, 기대치가 있었다고 생각했다. 루제비치의 시가 궁금했다기보다 아노르노가 그토록 칭송한 시가 궁금해서 루제비치의 시집을 펴들었다. 처음 수록된 작품은 생존자(Ocalony)였다. 생존을 말하는 그의 입은 거칠고 투박하고 처절할 줄 알았다. 하지만 그의 시는 해설에 적힌 것처럼 지극히 덤덤하고 담담한 기분으로 쓰여졌다. 때문에 더 공감했다. 그 자리에 있어본 적도 그 와같은 상황에 놓여본 적 없는 내가 공감했다.

 

 '이 것은 모두 텅 빈 동의어.' 이 한 줄로 이미 내 마음은 텅빈 상태가 되어버렸다. 인간과 짐승이 사랑과 증오가 적과 동지가 그리고 어둠과 빛이 동의어였다니. 그걸 몰라서 놀란것이 아니다. 깨닫지 못했을 뿐 알고 있었기에 놀랬던 거다. 수많은 전쟁을 통해, 그리고 참혹한 학살과도 같았던 사건들을 통해 우리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인간과 짐승이 얼마나 다르지 않은지를 알면서도 모른척 했음을 인정해야 했다.

 

그 한줄을 읽고 일주일이 넘게 다음 작품을 읽지 못했다. 이 것이 시가 아니고 소설이었다면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라도 참고 넘겼을테지만 이것은 시다. 시에 대한 원초적인 질문을 던져가며 일주일 동안 텅빈 동의어란 단어를 곱씹었다. 이 후의 시들은 마치 내속에서 나온것처럼 자연스럽게 고통을 던져주어 체념시키기도 하고 간간히 등장하는 '사랑'이란 단어의 숨을 쉬고 루제비치가 살아남았음을 다독여도 가며 읽어갔다. 그러다 한국전쟁을 보며 쓴 시를 보며 멀지 않은 시대에 또 역시나 지금 내가 밟고 선 땅에서 일어났던 전쟁을 느끼게 해주었다.

 

생의 한가운데서 라는 시를 읽으면서 흘러가듯 읽히나 했던 시들이 다시 발목을 잡았다. 인간을 사랑함을, 그 어떤 죄가운데에서도 인간을 사랑해야 함을 그가 배우듯 나도 다른 누구도 살아가는 이상 배우지 않을 수 없는 명제임을 깨달았다.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냈다. 때로는 반성하지도 변명하지도 설명하지도 않는다고 했다가 어느 순간에는 자신의 말들이 지나쳤음을 반성하기도 한다. 그의마음이 변한 것이 아니라 그가 사는 법을 배워간다는 생각이 든만큼 침묵속에서 피어나던 그의 시도 여전히 내게는 공감의 연속이었다. 그가 살아남았기에 그런 시를 쓴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가 살아남지 않았다면 이라는 가정은 하고 싶지 않다.

 

그동안 내가 읽어왔던 무수히 많은 시들, 아직 읽지 못한 그 보다 더 많은 시들속에서 루제비치의 작품 하나하나에 공감해왔던 경험을 다시 할 수 있을지 나는 알 수 없다. 텅빈 동의어 그 한 줄에 빼앗긴 내마음과 영혼은 동화에 이르러 가족을 통해 평안을 찾는 그의 모습속에서 지금의 나와 미래의 나를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