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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읽지 "Book"/요즘 모읽지?

<우리시대 영화장인> 한국 영화의 자부심을 만드는 예술가들

by 알 수 없는 사용자 2013. 7. 12.




작가주의 영화를 좋아하기 때문에 감독의 생각과 의도에 집중하면서 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한다. 기껏해야 편집과 음악 정도에 더 집중해서 보는 정도이다. 아마 내가 보통 관객의 수준일 것이다. 더 욕심을 내어 본다면 대중이라 일컫는 보통의 관객보다 영화에 조금 더 애정을 가지고 공부하고 싶어하는 관객 정도가 아닐까. 영화는 감독의 의도를 위해 조력자들이 감독의 총 지휘하에 작업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사운드며 조명이며 특수효과며 여러 요소들 중 어느 하나가 중요하지 않다고 여긴 적은 없지만, 누구누구의 작품이다 할 때 거론되는 감독을 피라미드의 끝에 놓인 1인의 창작자라고 생각해왔다. 바로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명필름에서 주관하고 씨네21의 주성철 기자가 인터뷰하고 엮은 이 책은 한국 영화의 현재를 이끌어가고 있는 영화 장인들에게 보내는 찬사다. 내가 아는 사람은 무술감독 정두홍 뿐이어서, 책에서 만난 장인들의 이야기 하나하나가 새로웠다. 이들과 모두 작업해보았다는 박찬욱 감독마저 처음 듣는 이야기가 많다고 하는 추천사를 보면 알 수 있듯, 정두홍 감독의 이야기도 당연히 생소하다. 또 하나의 새로운 부분은 이들이 영화계에 발을 디디던 시절의 충무로에 대한 묘사이다. 대학 시절 매일 충무로로 통학하던 나는, 영화의 본고장에 다닌다는 느낌이 좋았지만 그것을 실감하기란 거의 불가능했다. 그나마 흔적으로 남아 있는 것이 쉴 새 없이 들락이던 대한극장이었다. 이들의 청춘이 담겨 있는 낭만적인 충무로의 옛 모습은 내가 보고 싶어하던 충무로의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영화의 촬영부터 특수시각효과까지, 실제 촬영에서부터 완성이 되어가는 과정에 따라 각 단계의 장인들이 소개되어 있다. 그래서 이야기를 하나씩 읽을 때마다 영화가 점차 완성되는 기분이 든다. 비로소 영화의 예술을 어렴풋하게나마 이해하기 시작하는 느낌이다. 주성철 기자가 쓴 각 분야와 소개할 인물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담백한 예찬 뒤에 그들이 직접 들려주는 이야기가 실려 있는 구성이다. 주 기자가 언급한 엄청난 경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야기는 하나같이 소박하고 겸손하다. 그러면서도 영화계의 장인들답게 각자의 일에 대한 열정과 자부심, 철학이 남다르다. 어려서부터 좋은 환경을 타고나 자연스럽게 영화계로 들어올 수 있었던 이들이 있는가하면, 밑바닥부터 패배감을 극복하며 성장해온 이들도 있고, 전혀 다른 길을 가던 중 전환한 이들, 또 감독을 꿈꾸던 이들도 있다. 다양한 삶을 살아왔지만, 그들은 모두 영화에 대한 각자의 고민을 끊임 없이 해오고 있는 진정한 마스터들이다.


이들은 한편으로 최근의 한국영화는 각 분야에서 아쉬움을 토로한다. 제작과 관련한 시스템적인 문제들과 창작자와 제작자의 안이한 생각으로 영화를 제작하는 소수의 사람들에 대한 걱정들이다. 나는 그들이 지적한 몇 가지 이유에 깊이 공감하고, 예전 영화들은 참 좋았던 것 같은데 요즈음은 디테일한 감성이 느껴지지도 않고 상업성만 짙은 것 같다는 불만을 뱉으며, 점점 더 한국영화를 찾지 않고 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며 내가 놓치고 있던 부분이 있음을 깨달았다. 이들이 좋았던 작업으로 언급하는 영화들은 대부분이 내가 좋아하는 작품들이었고, 이 멋진 장인들이 오늘도 쉼 없이 혼신을 다해 작업하고 있다는 것을 상기하면, 이와중에도 좋은 한국영화를 발견하고 지지할 수 있도록 한국영화에 대한 관심을 소홀히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자칫 잘못하다가는 이들의 좋은 작품을 시기를 놓쳐서 보게 되어버릴지도 모른다.


결국 카메라는 인물의 영혼을 담아내는 것이니까. (13쪽)


공장에서 찍어낸 듯한 영화를 원하는 게 아니라면 만드는 사람들의 생각이 존중되어야 옳다. 예전 화가들도, 돈을 대는 사람들이 다 따로 있었다. 교회의 성화도 다 돈으로 만들어진 거다. 그런 가운데서도 자기가 하고 싶은 걸 해낼 수 있을 때 진짜 실력자들이 되는 것 같다. (31쪽, 촬영 김우형)


당시 우리 편집실은 충무로 삼가에 있었는데, 지금은 워낙 인쇄 골목이 돼 버렸지만 그땐 동네가 참 재밌었다. 바닥도 아스팔트가 아니라 유럽에서나 볼 법한 동글동글한 돌멩이 길도 많았고, 영화사나 관련 업체들이 많으니 골목이나 거리마다 재미난 영화 소품들도 쌓여 있었고, 심지어 길가에 옛날 병사들의 창이나 마차 같은 것도 세워져 있었으니 말 그대로 영화의 거리였다. (71쪽, 편집 김상범)


갈수록 시지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지면서 이제 촬영 현장에서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는 일이 마치 구시대의 유물처럼 되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다. 깊은 고민도 없이 무턱대고 "나중에 시지로 하면 돼"라는 태도가 과연 영화의 완성도에 도움이 될까. (161쪽, 특수효과 정도안)


주인공인 루크 스카이워커가 광선검인 라이트 세이버를 들고 서 있고, 옆에는 두 로봇 시스리피오와 알투디투가 있으며, 하늘에는 거대한 우주선 '데드 스타'가 떠 있는 그 포스터에 완전히 넋이 나갔다. 얼마나 거기 빠져 있었냐면, 초등학교 일학년이라 점심 때 귀가했어야 될 내가 저녁 때까지 오지 않아 집에서 난리가 났다. 가로등에 불이 들어올 야심한 시각까지 포스터 앞에 그냥 서 있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나를 보면 그때 얘기를 하신다. 어떤 영화 포스터 앞에서 일을 헤벌리고 서 있었다고. (194쪽, 특수시각효과 장성호)


영화가 여타의 예술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바로 감독의 손과 발과 귀가 되는 또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이며, 때로는 그들이 창작자로서의 감독보다 더 탁월한 창의성을 발휘하기도 한다. 영화가 '시청각예술' 이자 '종합예술' 이라는 얘기는 결국 바로 그러한 '협업' 이라는 속성 때문이다. (215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