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소설이라 쓰여 있지만 뒷표지에서도 드러나듯 정확히는 불륜소설이려니 싶다(사실이 그렇다). 하지만 에쿠니 가오리가 낯뜨거운 불륜을 소재로 소설을 썼다는 것부터가, 불륜의 미화일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지 않을 수 없다. 불륜녀의 변명에 넘어가지 않겠다고, 소설을 읽는다기에는 다소 불온한 태도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라라.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매일 아침 출근 준비를 하며 듣는, 어머니께서 틀어 놓는 <인간 극장>이 떠오른다. 약간 당황스럽고 어색한 3인칭 시점의 서술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도 정말 인간 극장 내래이션처럼 주인공의 입장과 심리를 대변해주면서 말이다.
착실하고 유순한 가정주부 미야코와 일본에 거주하며 학생들을 가르치는 쾌활한 미국인 존스 씨는 한 발짝 거리를 두고 묘사되지만, 두 사람의 입장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불륜을 사랑으로 만들어 준다. 사실 세상의 모든 불륜은 본인들에게 사랑 아닌가. 다만, 세상의 불륜이 기존의 합법적 사랑에 대한 이해와 설명이 부족한 데 반해, 이 에쿠니 가오리의 소설에서는 미야코가 남편 히로시에게 얼마나 노력을 했고 히로시가 또 얼마나 무심하게 굴었는지, 그래서 히로시가 미야코를 얼마나 외롭게 만들었으며, 미야코가 '세상 밖으로 나와'버릴 수밖에 없었는지 충분한 설명을 한다.
당연히 설명이 있다 해도 불륜은 불륜. 하지만 미야코 자신도 이 모든 상황과 자신의 책임을 이해하고 있으며, 존스 씨 또한 그리 책임 있는 인물로 등장하진 않는다. 여기에서 주목하는 건 미야코의 삶이다. 불륜은 나쁘지만, 미야코는 존스 씨와의 산책놀이(를 가장한 외간 남자와의 데이트질)인 '필드 워크'를 통해, 자신이 잊고 있던 감각과 놓쳐버리고 말았던 반짝이는 것들을 발견한다. 미야코가 건전한 주부의 삶을 지키며 담장이 높은 집에 갇히듯 지내면서도 담장 밖으로 꽃을 심고 돌보던 모습은, 시간이 문제였을 뿐 탈출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소설에서의 불륜은, 도저히 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일을 통해 주체성을 찾는 여자를 표현하기 위한 자극적인 소재에 불과한 것 같다. 그래서 불륜소설이고, 미야코의 불륜은 못마땅하지만, 그럼에도 미야코를 응원할 수밖에 없어진다.
약간의 특별한 일은, 일단 말해버리고 나면 이전만큼 특별하지는 않은 게 돼버리니까 말이죠. (54쪽)
화가 나는 건, 미야코 씨가 몹시 천진해 보인다는 거였습니다. 마치 자신의 양심에는 한 점의 그리낌도 없다는 듯이. 나탈리가 생각하기에 그것은 누군가의―혹은 무언가의―보호 아래 있는 여자의 특징이었습니다. (82쪽)
"서로가 제대로 마주하려다 보면, 때에 따라 충돌도 피할 수 없는 거죠." (156쪽)
자신 주변에 확고한 세계가 존재한다고 믿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며, 인생을 사노라면 발밑이 흔들리거나 기존의 가치관이 무너져버리는 일을 종종 겪기 마련입니다. (1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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